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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생일이다.
마흔다섯.
사실, 나이를 명확하게 적는 일이 유쾌하지 않다. 늘 30대이고 싶었고, 40대가 지나면 50대가 된다는 사실이 두렵고 우울했다. 십년 전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달려오고 보니 거울 속 나는 우중충하고 힘없는 낯선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진 속 나를 보면 한숨부터 나오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내가 사진 속 피사체가 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하기 시작했다.
며칠전 옛 회사 동료이자, 잘나가는 PB로서 나보다 앞서 워킹맘의 삶을 꼿꼿하게 버텨온 언니를 만났다. 주변 지인이 사고사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은 언니는 대뜸 나와 대화 도중 사진을 찍었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며, 사람이 소중하다며...그런 소소한 행동도 나이가 들면 겪게 되는 일이라 생각되어 슬펐다.
검색창에 마흔다섯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중년'이라고 알려준다. 50대가 되면 그 단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엄마'라는 단어도 익숙하지 않다.
다시 45라는 숫자를 검색창에 넣으면 수학적으로 45는 44보다 크고 46보다 작은 자연수라고 알려준다. 그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의미인가.
제법 의미있는 해석도 있다. 과학적으로 45는 45도를 말한다. 어떤 물체를 던질때 지면과 45도 각도를 이루면 가장 멀리 날아간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X축으로 놓고 나라는 사람을 Y축에 놓는다면 지금은 사회적으로 가장 멀리 내가 뻗어나갈 수 있는 시점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돌아보면 많은 일을 했다. 부모님의 도움, 나의 방황, 그리고 무지 속에 19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4년간의 대학생활을 거쳐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덕(?)에 사회생활 한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24살 경제부 기자로 시작해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언론에 몸담고 있다. 중간에 금융투자회사의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늘 글쓰는 일을 했고 경력의 단절 없이 경제매체 데스크 자리까지 올라왔다. 책을 쓰기도 했고 방송을 했고 지금은 방송 전담 부서도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현재 주변인 모두 건강하고, 나 역시 튼튼한 몸으로 돈을 벌고 있다. 지난 20년간 나는 잘 해 온것 일까.
마흔다섯, 지금 내가 45도로 던질 수 있는 물체는 무엇일까.나는 새로운 공(물체)을 잡기로 했다. 지금껏 내가 해온 일의 결실을 맺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공이 아닌 전혀 다른 공을 45도 각도로 던져보고자 한다.
10년을 사랑했지만 결국은 포기한 미술, 20년간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지만 깊이 파지는 못했던 투자분야, 먹고 살아야 하기에 10년 뒤로 미룬 '작가 오월', 후회와 주저함으로 가득찼던 어제와 오늘에 새로운 자극제가 등장했다.
우습지만 마흔다섯, 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새롭게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후 머리 속에서 지웠던 피아노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덜컥 집어든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No 17.18.19에 도전. 관련 지식이라고는 1도 없는 상태에서 바이올린 도전. 내 코호스트들은 평균 90~100세까지는 산다니까, 55세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뭐라고 하겠지 라는 심정으로 딱 10년만 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직업적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순히 취미다.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내가 처음으로 가슴뛰는 일을 만났기 때문이다.
오랜기간 글을 쓰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하고 투자분야를 공부했지만 그 일이 너무 좋아서 설레였던 기억은 없다. 잠시 일상이 지루해 중국어를 배울때도 영어보다는 중국어가 재미있네...정도 였던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그 일을 하러 간다더니 정말 그랬다. 며칠 요란을 떨었더니 벌써부터 남편이 놀려대기 시작한다. "콩쿨나가는 거냐.." "혹 유학갈려고 하는 건 아니지?"라며 한걸음 더 가 "매일 같이 피아노를 2-3시간씩 쳐대는데 뭔가 생산적인 일(돈이 되는)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결혼식 알바 같은거 라도 알아봐"라며.
남편, 일단 내년에 바이올린부터 하나 지르고 생각할게
이것이 나의 마흔다섯 생일의 한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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